
사진. 서울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박민혁 교수 연구팀과 성균관대학교 윤정호 교수 연구팀이 최근 정보는 잠시 기억하고 오래된 정보는 스스로 잊는 반강유전체 기반 AI 반도체 소자를 개발했다. 그동안 소자의 한계로 여겨졌던 ‘자연스러운 망각’ 특성을 시계열 정보를 처리하는 연산 기능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연구는 전압을 가하면 상태가 변하고 전압이 제거되면 스스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반강유전체의 특성에 주목해 진행됐다. 연구팀은 산화지르코늄(ZrO₂)과 비정질 인듐·갈륨·아연 산화물(a-IGZO)을 결합한 2단자 소자를 제작하고, IGZO 조성을 조절해 작은 상태 변화도 뚜렷한 전류 차이로 읽어낼 수 있도록 구현했다.
최적화된 소자는 약 890의 온·오프 전류비를 나타냈으며, 4비트 입력에 해당하는 16가지 조합을 서로 다른 전류 상태로 구분했다. 특히 전압이 제거된 이후 소자가 스스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특성을 이용해 최근 입력은 일정 시간 기억하고 오래된 정보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단기 기억 기능을 구현했다.
음성이나 심전도, 환경센서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데이터는 현재 입력값뿐 아니라 직전 입력의 맥락까지 함께 처리해야 한다. 기존 AI 하드웨어는 메모리와 연산 장치 사이에서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이동해야 해 속도와 전력 효율에 한계가 있으며, 비휘발성 소자 기반 리저버 컴퓨팅에서는 이전 상태를 지우기 위한 별도의 초기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연구팀은 반강유전체의 자연스러운 망각 특성을 활용해 별도의 초기화 과정 없이 시계열 데이터를 연속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입력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환경에서도 과거 정보의 영향은 시간에 따라 감소하고 새로운 정보는 연속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성능 검증에서는 손글씨 숫자 인식에 소자를 적용해 입력 데이터를 75% 줄이고도 90.4%의 인식 정확도를 기록했다. 실제 소자 특성을 반영한 회로 모델을 이용한 시계열 예측 실험에서는 에농(Hénon) 카오스 신호와 실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변화를 각각 NRMSE 0.01489와 0.12263의 성능으로 예측했다.
에농 카오스 신호는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증폭돼 미래 값을 예측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비선형 시계열 데이터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주요 반도체 설계·제조·장비 기업의 주가 움직임을 종합한 지수로, 실제 금융시장의 복잡하고 불규칙한 변화를 반영한다.
제작된 소자는 4만제곱마이크로미터(㎛²) 면적을 기준으로 약 2마이크로초 만에 동작했으며, 연산당 에너지 소비는 480피코줄 이하를 기록했다. 연구팀은 기존 멤리스터 기반 물리적 리저버 컴퓨팅(PRC) 소자와 비교해 빠른 동작 속도와 낮은 에너지 소비를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소자 미세화를 통해 성능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소자 면적을 100제곱마이크로미터(㎛²) 수준으로 줄이면 동작 속도는 약 192나노초, 에너지 소비는 115펨토줄 이하까지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연구는 초기화 없는 연속 처리와 다중 상태 표현, 데이터 압축, 빠른 동작 및 낮은 에너지 소비를 하나의 2단자 소자에 결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산화지르코늄(ZrO₂) 기반 반강유전체 터널접합(AFTJ)을 물리적 리저버 컴퓨팅(PRC) 소자로 활용한 첫 사례로, 반강유전체의 상태 회복 특성을 ‘망각’이라는 연산 기능으로 전환했다.
향후 음성 명령과 웨어러블 생체 신호, 환경·산업 센서 데이터를 센서 가까이에서 처리하는 저전력 엣지 AI 하드웨어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자 미세화와 어레이 집적이 진행되면 시계열 데이터에 대한 더욱 빠르고 에너지 효율적인 정보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가 변동을 비롯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복잡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미래 값을 예측하는 저전력 AI 하드웨어에도 활용될 수 있다.
박민혁 교수는 “반강유전체가 전압 제거 후 스스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성질을 한계가 아니라 ‘망각’이라는 연산 기능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며 “하나의 2단자 소자에서 비선형 변환과 단기 기억, 자연 초기화를 함께 구현해 저전력 시계열 AI 하드웨어의 소자 선택지를 넓혔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소자 면적을 줄이고 어레이·회로 수준의 검증을 진행해 음성·생체·환경 신호를 현장에서 처리하는 엣지 AI 시스템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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