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품종 소량생산, 가격경쟁심화, 단납기화, 제품수명의 단명화…
21세기 제조 산업이 풀어야할 과제들이다. 이를 위해 업계는 고정밀, 고속, 고품질이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게 되었고, 이 같은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기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들 뛰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변화에 끌려가기보다 변화를 주도하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우리나라 취약점인 부품생산 기업이라 관심이 더욱 큰데, ‘고속 스핀들’ 개발 생산기업 (주)테크노라이즈를 찾아가 ‘TERA’ 시대를 준비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취재 정요희 기자(press1@engnews.co.kr)
고속 스핀들 ‘Made in Korea’를 실현한다
“다음 성장 동력을 고민하다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역할모델이 될 만한 기업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비록 쫓아가는 입장이지만 그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2006년 말 ‘고속 스핀들 원천기술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겠다’며 ‘Made in Korea’가 붙은 국산 고속 스핀들을 선보인 중소기업 (주)테크노라이즈의 당찬 포부다.
2000년 벤처붐과 함께 설립된 동사는 당시 대기업과 함께 개발과제를 수행하며 탄탄대로를 걷던 중 고객사의 부도 및 사업전환으로 인해 몇 년간 진행했던 사업아이템을 접어야 하는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동사는 쓰러지지 않고 2004년, 새로운 아이템으로 ‘고속 스핀들’을 선택해 오랜 시간 개발에 몰두했고, 결국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에 성공해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이 분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이종열 대표이사의 지식과 직원들의 열정으로 좀 더 쉽게 접근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현재 판매되는 고속 스핀들은 이제 8만~10만rpm은 기본이고, 도시바에서 나온 PCB 드릴링 머신은 30만rpm까지 나온다하니 ‘고속’은 이제 스핀들에 있어 필수항목이 되었다. 동사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 제품으로 고객을 사로잡고, 더 나아가 더 작고 다이내믹한 제품인 30~40만rpm을 요하는 치과용 핸드피스를 개발하고자 한다.
국산 고속 스핀들 개발이라는 도전에 성공한 동사는 지금 또 다른 목표에 도전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 글로벌 경쟁기업을 역할모델로 삼다
(주)테크노라이즈는 중소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뚜렷한 목표와 전략을 갖고 있는 보기 드문 기업이다. 그것도 꽤 구체적인 내용이라 오히려 의아함을 갖게 한다.
“제가 항상 바라보는 모델은 ‘일본’입니다. 우리의 산업은 좋든 싫든 일본의 모습 그대로를 닮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들이 우리와 다른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뚜렷한 목표와 전략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했습니다.”라는 이종열 대표는 “일본을 이기기 위해 일본을 배운다”고 전했다.
그래서 일본의 대표적 공작기계전시회인 JIMTOF(Jap-an International Machine Tool Fair)는 직원들과 함께 빼놓지 않고 다녀오고 있다.
“일본이 왜 저 기술을 하려고 하는지 항상 모니터링 해야 한다”는 이 대표는 그들의 원천기술력과 적극적인 변화로 복합기가 탄생할 수 있었고, 이는 곧 인건비를 줄여 도요타가 현대보다 저렴하고 좋은 차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라 풀이했다.
현재 동사의 경쟁사는 초고속 회전기술 특화 전문기업인 일본 나카니시(NSK; NAKANISHI)다. 물론 혹자는 상대가 상대인지라 불가능하다는 말을 내뱉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경쟁사를 배우고 그대로 따라가며, 오히려 더 많은 땀을 쏟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 내수와 수출을 동시에
작년 10월 경제위기 이후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주름살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내수경기 위축은 물론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수출도 만만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사는 지금 이 상황을 담담히, 조금은 반갑게 받아들이고 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그 말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경쟁사 제품의 60% 정도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주)테크노라이즈의 고속 스핀들 ‘TERA Spindle’이 일본으로 갔을 경우 환율로 인해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메리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그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일 일만 남은 동사는 먼저 일본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국내 고객들을 만나가며 TERA Spindle을 알려나갈 계획이다. 이종열 대표이사는 “TERA Spindle을 통해 국내 고객들 역시 외산에 뒤지지 않는 복합기를 개발할 수 있다”며 국산 부품으로 만드는 국산 기계개발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또한 지금의 상황을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기회로도 충분히 활용할 생각이다. 우리나라, 대만 등의 임가공시장이 중국에서 동남아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동사는 그 시장에 먼저 들어가 ‘TERA Spindle’이라는 브랜드를 제대로 인지시키고자 한다. 이 시장에서도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 경제위기일수록 힘을 발하는 가격경쟁력이라는 무기를 가졌기에 해 볼만 한 게임이라는 것이 동사의 설명이다.
완벽한 제품 위해 계속되는 ‘Technology Rise’
2007년부터 판매된 ‘TERA Spindle’에 대한 반응은 의외로 조용하다. 많은 기업들이 입소문을 통해 시장을 확대했다고 들어왔던 터라 조용하다는 이종열 대표의 말에 약간 실망한 모습을 보인 취재진에게 그는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첫 선을 보인 제품들이기에 판매를 위한 입소문을 기대하기 보다는 불량이나 A/S 등의 반응이 더 예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더해줬다.
즉, 판매 2년여가 지난 ‘TERA Spindle’이 지금까지 꽤 많이 판매되었음에도 아직까지 A/S 요청이 없다고 하니, 동사의 제품들은 고객의 생산현장에서 고객이 특별히 요청하지 않을 정도의 성능을 충분히 내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사용해봐야 하는데, 아직까지 극한조건에서 사용하는 이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더 많은 사용조건에서, 더 많은 이들이 사용해보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해 지속적으로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고 싶다는 동사는 여전히 기술개발에 여념이 없다.
도래하는 ‘테라(TERA)’ 시대를 준비한다
‘TERA Spindle’이라는 브랜드로 시장을 열어가고 있는 (주)테크노라이즈. 그들은 이 브랜드네임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했다. 10의 12승을 그리스어로 표현한 ‘TERA’가 본뜻이지만, 이제 곧 다가올 ‘TERA 시대’를 먼저 준비하겠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비트로 시작한 컴퓨터는 바이트, 킬로바이트, 메가바이트를 넘어 최근의 기가바이트까지 빠르게 진화해왔듯이, 이제 테라바이트의 시대가 멀지 않았기에 ‘TERA Spindle’은 그때를 미리 준비한 미래형 브랜드 네임이라 할 수 있다.
어려운 길임을 알기에 누구도 쉽게 나가지 못했던 길을 힘차게 걷고 있는 (주)테크노라이즈, 그들의 걸음걸음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