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가공기계산업은 크게 두 가지 산업의 영향을 받는다. 하나는 종래의 일반 기계산업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석유화학산업이다. 지난달에는 플라스틱기계산업의 연관산업인 석유화학산업의 국내 동향 및 전망을 훑어봤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석유화학산업의 글로벌 동향과, 원가경쟁력 및 원재료 매장량 한계 등의 위기 속에서 한국이 지닌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을 살펴봤다.
1. 석유화학산업의 판도 변화 “중동이 만들고 중국이 쓰고…”
100여 년 전 석유산업에서 파생돼 탄생한 석유화학산업은 이제 생활용품과 섬유는 물론 자동차, IT, 주택 등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제품들의 핵심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1980년대까지 석유화학 생산과 소비의 중심은 유럽,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이었으나 1990년대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적극적인 참여에 이어, 2000년대 들어 생산의 중심은 중동으로, 소비의 중심은 중국으로 이원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세계 석유화학산업의 판도 변화에 따라 한국 업체들에게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2. 내수 성장 정체, 수출 시장 경쟁 심화! 한국 석유화학 어디로?
세계 석유화학산업이 100년의 역사를 지닌 것에 비해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역사는 40여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정부와 대기업의 집중적인 투자 속에서 단기간에 고도의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최근 산업을 둘러싼 환경에서 다음 두 가지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2000년대 들어 외형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석유화학제품 생산 증가율은 1990년대 연평균 15.6%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3.9%의 한 자릿수 성장률로 하락했다. 특히, 2005년을 기점으로 수출량이 내수출하량 보다 많아졌다는 사실은 이제 한국 업체들이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모색해야 함을 말해준다.
둘째, 2000년대 들어 나타나고 있는 저가의 원료를 이용한 경쟁 국가들의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과거 석유 생산에만 집중했던 중동은 이미 저가의 에탄가스를 기반으로 에틸렌 생산능력을 강화시키고 있는데 2001년 713만톤에서 2009년 2,027만톤까지 9년 만에 2배 이상 증가시킨 바 있다. 이러한 중동의 증설은 동북아시아 업체와 비교했을 때 에틸렌 제조원가가 26.3%에 불과하다는 탁월한 원가경쟁력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동북아 업체들에게 큰 위협이라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중동에 이어 미국과 중국이 저가의 원료를 이용한 석유화학제품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원료는 셰일가스이다. 셰일가스는 2000년대 들어 경제적으로 개발 가능한 시추기술이 개발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셰일가스 매장량은 각각 세계 1, 2위 규모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이 셰일가스를 이용한 에틸렌 생산을 시작한다면 석유화학 시장은 더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공산이 커 보인다. 이것이 한국 석유화학산업이 위치한 현주소이다.
3.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지닌 석유화학산업의 무기는?
중동의 원가경쟁력과 중국,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 등의 요인이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석유화학산업이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경쟁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 성장하는 수요시장에 대한 지리적 이점
국가별 1인당 GDP와 합성수지 소비량 자료 : 석유화학공업협회, 한화증권 리서치센터
선진국과 신흥국의 2011~2014년 에틸렌 예상수요 자료 : LG경제연구원
한국은 성장하는 수요시장을 곁에 두고 있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연평균 2.3% 성장한 글로벌 에틸렌 수요 속에서 아시아의 수요는 연평균 5% 성장했다. 특히, 중국은 연평균 10% 성장하며 세계 에틸렌 수요증가를 견인했다. 이러한 가운데 아시아 국가들의 1인당 합성수지 소비량은 여전히 선진국에 미치지 못한다. 통상 1인당 합성수지 소비량은 1인당 GDP 2만달러 수준까지 꾸준히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근거할 때 향후 아시아 국가들의 소득수준 향상과 이에 따른 소비 능력 확대는 석유화학 수요 증가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외에 기타 아시아 국가들의 수요 확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WTO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폴리에틸렌(PE) 수입금액은 2008년 기준으로 46.6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외에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터키 등 신흥 6개 국가의 폴리에틸렌(PE) 수입금액을 합산하면 2008년 기준으로 40.0억달러이다. 이는 중국 수입금액의 86.3%에 해당한다. 수출을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사실상 중국과 같은 크기의 시장이 하나 더 있는 셈이다.
이들 6개 국가의 2001년~2008년 폴리에틸렌(PE) 수입금액 증가율을 살펴보면 연평균 24.1%로 중국의 수입금액 증가율 8.4%를 능가한다. 특히 인도의 경우 연평균 증가율이 33.0%에 이른다. 이는 이들 지역의 생산능력 증가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한국 업체들이 이들 지역에서 판매망을 강화하거나 생산시설 투자를 진행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나. 프로필렌과 부타디엔 계열 제품에 대한 기대
한국업체들이 강점을 지니고 있는 프로필렌과 부타디엔 계열의 제품 시황이 여타 다른 석유화학제품군에 비해 2014년까지 구조적으로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납사를 원료로 사용하는 한국 업체들은 에탄가스를 원료로 사용하는 중동 업체에 비해 에틸렌 제조원가 측면에서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러나 납사는 분해할 때 에틸렌 외에 부가적으로 생산되는 기초유분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이 기초유분 가운데 프로필렌과 부타디엔이 있는데 이 제품들은 2014년까지 신규수요가 신규공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어 구조적인 업황 개선이 예상된다. 결국, 에틸렌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지만 프로필렌과 부타디엔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것이다.
다. 현지화를 바탕으로 한 원가 경쟁력 확보 노력
저가의 원료를 확보하기 위한 한국 업체들의 노력의 결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결국 한국업체들도 범용 에틸렌 제품 시장에서 중동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2014년 한화케미칼이 사우디에서 EVA 20만톤, 2015년에는 호남석유화학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에틸렌 40만톤, HDPE 36만톤, PP 8만톤, 2016년에는 LG화학이 카자흐스탄에서 에틸렌 84만톤, PE 80만톤을 생산할 계획인데 이러한 저가원료를 활용한 해외 생산 확대는 한국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다.
4.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의 전략
이와 같은 중장기 흐름을 배경으로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2009년 이후 중국의 경기부양 과정에서 석유화학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최고의 호황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석유화학 업황은 2011년 2분기 이후부터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중국의 정책방향이 경기부양에서 긴축으로 전환되면서 석유화학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다시 석유화학 업황이 성장할 것이라 점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부담이 완화되면서 긴축완화 시점 또한 다가오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이미 재정완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2011년 내에는 대출규제 완화를 시작으로 미세한 통화정책 완화가 시행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석유화학기업들의 행보를 살펴보면 우선 호남석유화학의 경우 매출 구성면에 있어 향후 구조적인 시황 개선이 예상되는 프로필렌과 부타디엔 계열 제품의 비율이 32.7%에 이르며, 여수공장 증설 완료로 인한 에틸렌 270만톤 체제 구축과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회사 타이탄 인수 등 동남아시아 시장 교두보 마련으로 경쟁력을 갖춰 향후 범용제품 시장에서 중동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원가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LG화학의 경우 올해 합성고무 신증설에 이어 내년에는 아크릴레이트, SAP(고흡수성수지), 페놀 등 신설비 가동이 예정돼 있어 견조한 성장세가 예상된다.
한화케미칼은 자회사인 여천NCC로부터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공급 받아 PVC 56만톤, PE 77만톤 등 에틸렌 계열 합성수지를 주력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2010년 중국 닝보 지역에 연산 30만톤 규모의 PVC 공장을 완공, 해외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PVC와 PE는 석유화학의 대표 제품들로써 중국의 긴축완화 정책이 시행된다면 수혜를 받을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 : 한화증권 Analyst 이다솔